창소리교회는
- 1998년 10월 26일 충남 예산 창소리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습니다.
-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꿈꾸는 감리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 예산지방)입니다.
- 소박하지만 신실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진지하게 말씀을 나누며, 묵묵히 기도로 세워 가는 교회입니다.
- 지금은 아주 작게 예배만 드리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꿈꾸며 기도합니다.
- 조용히 함께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 안에서 은혜를 나누고 싶은 모든 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일설교
시편의 영성, 선지자의 영성 (5)
2026년 8월 2일 주일
평강의 왕 예수가 가져올 평화의 나라
이사야 9장, 11장
조용하다고 다 평화일까? 이사야가 말하는 진짜 평화
1
침묵이 흐르는 식탁, 그것은 평화인가?
명절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식탁을 떠올려 보십시오. 큰 소리나 다툼은 없지만, 마음에 있는 말은 아끼며 필요한 대화만 오갑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어딘가 서먹한 공기가 흐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상태를 '평화롭다'고 부를 수 있을까요?
흔히 평화를 '싸움이 없는 상태'라고 오해하지만, 이사야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평화를 제시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침묵 속에 숨은 불편한 긴장이 아니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역동적인 사건입니다.
2
평화는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국어사전은 평화를 '평온하고 화목함'이라 정의합니다. 조용한 상태(평온)에 더해 서로 사이가 좋은 상태(화목)가 있어야 비로소 평화입니다.
아하스 왕은 이 지점에서 실패했습니다.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대신 앗수르에 예물을 바치고 그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당장 전쟁은 피했지만, 강자의 눈치를 보며 사는 '가짜 평화'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도 그냥 조용하고 잠잠한 것이 아닙니다.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화목함으로 이어지고, 상한 마음이 다시 회복되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3
가장 먼저 짓밟힌 땅에 가장 먼저 비치는 빛
스불론과 납달리 땅(갈릴리)은 앗수르가 쳐들어올 때 가장 먼저 짓밟히고 멸시당하던 아픈 땅이었습니다.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답이 없는 "짙은 흑암" 속에 갇힌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곳, 가장 먼저 어두워진 자리에 가장 먼저 빛을 비추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소외되고 상처 입은 갈릴리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어둡고 답이 보이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평화의 왕이 가장 먼저 찾아오시는 자리입니다.
4
한 아기의 어깨에 실린 불가능한 이름들
이사야 9장 6절은 오실 왕을 다섯 가지 이름으로 부릅니다. '기묘자'와 '모사'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가진 분이라는 뜻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은 오직 하나님께만 쓰이는 칭호입니다.
이 왕의 나라에서는 쳐들어오던 군인들의 군화 소리가 멈추고, 그 신발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살라져 사라집니다. 이 평화는 인간의 외교력이 아니라, 기드온의 300명 용사처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과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불가능한 승리입니다.
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불편한' 공존
이사야 11장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파격적인 나라를 보여줍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살고, 표범이 염소와 눕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는 나라. 강자가 약자를 먹이로 삼는 '세상의 방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이 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재판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결하지 않습니다." 겉모습과 소문에 휘둘리는 세상과 달리, 오직 공의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변호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한 나라가 우리가 꿈꾸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6
평화의 백성으로 사는 실천, "내가 옳다"는 마음 내려놓기
평화의 나라 백성들은 사람을 해치던 칼을 쳐서 땅을 일구는 보습을 만듭니다. 생명을 끊던 도구를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바꿉니다. 우리가 매일 다투는 근본 이유는 "내가 옳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며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십시오.
- 마음이 불편해진 지인에게 먼저 안부 전화 걸기
-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기
-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화의 왕을 한 걸음씩 따라가기
7
'미래의 일'을 '이미 된 일'처럼 사는 법
이사야는 아직 오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며 "태어날 것이다"가 아니라 "태어났다"는 과거형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믿음 안에서는 이미 성취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2,000년 전 말구유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평화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신 그분을 왕으로 모실 때 시작됩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이 옳다는 확신을 내려놓고
평화의 왕을 따를 준비가 되셨나요?
평화의 왕을 따를 준비가 되셨나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이사야 9:6
* 말씀은 매일성경(성서유니온선교회 발행)의 본문 순서를 따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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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들이 펼쳐가는 언약의 역사 (2)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세기 25장
2026년 4월 12일
족장들이 펼쳐가는 언약의 역사 (1) /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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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요약 듣기'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예배시간
주일예배
주일 낮 11:00
수요기도회
수요일 저녁 7:30
새벽기도회
화–주일 새벽 5:00
